- 손정민 프로필

본명 이름은
Aimee Kim Son
에이미 킴 손

한국명 이름
손정민

출생 나이 생일
1975년 7월 24일 (47세)

고향 출신
미국
국적
미국

신체 키 몸무게
163cm, 43kg, B형
가족관계
부모님, 남동생 손호영

 손정민, 동생 손호영도 몰랐던 '스토킹' 충격
- 2023. 7. 22

손호영 누나로 알려진 손정민이 목숨이 위협을 당했을 정도로 막대한 스토킹을 당했던 아픈 과거를 전했다. 그가 돌연 한국에서 사라진 이유였다. 


21일 근황올림픽에서 'god 손호영 친누나.. 갑자기 사라진 후 해외로 도망쳤던 섹시 여배우 근황'란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답니다.

이날 제작진은 "오늘은 과거 드라마, vj로 활동, 손호영의 누나이기도 하다"며 소개, 바로  손정민이었다. 과거 다방면에서 활동했던 손정민은 "그때 작은 역할도 다 했다"며 웃음, "동생 손호영과 별개로 커리어를 쌓았다 그냥 가족일 뿐, 동생은 동생 길, 난 내 길을 갔다"며 쿨하게 답했다. 

하지만 갑자기 소식이 끊겼던 손정민.  아예 사라졌던 그였다. 그는 "끝내겠단 마음으로 그만뒀다"고 대답하기도 했답니다.

이유를 묻자 그는  "한 십 몇년 일하니 인맥이 쌓이더라, 드라마 오디션도 들어왔다"며  "어느 날 제작과 투자자쪽 중국분도 있었는데 그 사람이.."라며 조심, 알고보니 자신에게 대시를 했다는 것.   손정민은 "당시 동생처럼 톱스타는 아니었다 내가 스몰 연예인이라고 하니 큰 배우가 되게 해주겠다고 해 , 보통 여자들은 자기보면 돈도 많고 권력이 많으니 좋아하는데 난 그냥 그랬다"며 그 제안을 거부했다고 했다. 

손정민은  "어떤 남자를 만나 인생을 바꿔야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데  너무 귀찮게 하니까  나중엔 숨고 싶더라 , 사라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롭혔다"고 말했다.  어떤 괴롭힘인지 물었다. 강제로 손을 잡는 수준이었는지 묻자 손정민은 "그런 수준이 아냐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했다,자기 뜻대로 내가 여자로 안 되니까 *을 조르던 것이다. 기절했다"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스*킹수준의 폭력을 당한 것입니다.


손정민은 "기절해서 깨어났을 때 죽을 뻔했구나 깨달아, 경찰한테 신고도 못했다"며 "(신고해도)돈으로 막을 것 같아 사라져야겠다 생각했다, 도망가려고 숨었고, 일 다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시골에 가서 눈에 띄지도 않았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대인기피증에 걸렸을 정도라는 것. 

동생인 손호영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동생도 힘든거 혼자 다 참아절대 나에게 걱정을 나누지 않은 동생"이라며 "괜히 동생에게 피해될까 싶었다"며 그렇게 혼자 감내해야 했다고 했답니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에서 재활했다는 손정민은  "우연히 아버지 칠순잔치 동생과 가족들이 한국에 오라고 해, 근데 괜찮더라"며 "그래서 나왔는데 우연히 3년이 지나니 행사 전화가 와 너무 고맙더라, 내가 이제 그만 정신차려야지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때 그 사람도 다른) 여자 좋아하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용기내서 다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며 SNS도 오픈하는 등 활발히 활동할 것이라 전해 눈길을 끌었답니다.

손호영 "결혼 할 것"..누나 손정민, 가정사 솔직 고백
- 2022. 10. 13

'신랑수업' 손호영이 결혼에 대한 의지를 보였고, 누나 손정민은 이에 가정사를 언급했다.

12일 방송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이하 '신랑수업')' 36회에서는 ‘미혼 남매’ 손호영, 손정민의 투닥투닥 집들이 현장이 펼쳐졌답니다.

이날 손호영은 누나 손정민의 집에 방문했다. 스튜디오에서 출연진들은 손호영이 낯선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자 의아해했다.

이에 손호영은 "저의 친 누나다"라고 소개했다. 손호영의 누나 손정민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과거 연예 정보 프로그램 리포터를 오래 진행했다고. 이후 모델, MC, 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손호영은 "(누나가) 지금은 연극도 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답니다.

손정민은 손호영에게 "어렸을 때 앨범 있다"며 과거 사진을 꺼냈다. 이들의 과거 사진에서 특히 눈길을 끈 건 아름다운 미모를 소유한 어머니였다.

손호영은 "저희 어머니가 미인대회도 나가고 하셨다"고 밝혔다. 과거 사진을 보던 손호영은 손정민에게 "왜 이렇게 여장을 시켰냐"고 말했답니다.

손호영은 "어렸을 때 누나가 저를 데리고 그렇게 여장을 시켰다. 누나가 부르면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누나랑 옆에 있는 게 좋아서"라며 5살 차이가 난다고 전했다.

신봉선은 "5살 터울이면 안 싸우고 컸겠다"고 반응했고, 손호영은 "어마어마하게 싸웠다. 근데도 말은 다 들었다"고 이야기했답니다.

손정민은 "'신랑수업'은 결혼 하고 싶어서 출연한 거냐"라고 물었고, 손호영은 "형제라고는 누나와 나인데 나도 이제 두 달 뒤에 44살이다. 그러면 슬슬 준비를 안 하면 나도 한없이 갈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손정민은 "근데 원래 일찍 가고 싶어 했잖아"라고 물었고, 손호영은 "원래 그랬다. 근데 그건 진작에 포기했다"고 답했다. 이유에 대해 묻던 손정민은 "한 여자만 못 만나겠지?"라고 돌직구를 날려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손호영은 "20, 30대에는 아직 놀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것 같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면 늦어질 것 같아서"라고 답하며 "누나는 결혼이 안 하고 싶었던 이유가 뭐냐"고 질문했다.

손정민은 "안 하고 싶은데, 나중에 친구 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다)"라며 "웨딩드레스를 많이 입어봤다. 촬영도 그렇고, 웨딩숍 모델도 많이 하고 잡지도 찍고. 웨딩드레스에 대한 로망은 없다"고 털어놨다. 손호영은 "근데 그게 다르다. 내 드레스를 골라서 '신부 손정민'인게 엄청 다를 거다"라고 설명했답니다.

손정민은 "결혼이라고 생각하면 자식을 키워야 하는 것도 잘해야 하고, 아무튼 잘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라며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밝혔다.

손정민은 "아빠 때문에 그런가? 우리 부모가 이혼을 해서 그런가. 그걸 보니까 내 자신을 못 믿겠고 나도 겁이 나긴 하더라. 안 한다는 건 아니고 언젠간 할 거야 이러는데 지금 당장 하느라고 하면 (부담된다) 너는 자신 있냐"고 물었답니다.

손호영은 "결혼은 자신감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라며 "일단 닥쳐서 살고 그럼 또 하게 돼있고, 다들 그렇게 시작한 것 같다. 자신 있게 시작한 것 같진 않다. 아빠도 그러더라. '나도 처음이고 가정을 꾸린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하면 될 줄알았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쨌든 (장가) 갈 거니까. 갈 생각이 있으니까"라고 이야기했답니다.

손정민은 "결혼해라"라며 결혼을 승낙하는 멘트를 더해 웃음을 안겼다. 이에 김원희는 "호영이는 곧 갈 거 같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냐"며 손호영에게 응원을 건넸습니다.

윤석열 장모 ‘잔고증명’ 항소심서 법정구속…1심 징역 1년 유지
- 2023. 7. 21.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통장잔고 증명서 위조 등 혐의(사문서위조,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로 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76)씨가 21일 항소심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 됐다. 최씨는 지난 2021년 1심에서도 같은 형량을 선고받았지만, 당시 최씨가 재판을 받고 있던 다른 혐의(요양병원 불법개설)에 대한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라 법정구속 되진 않았었답니다.


심리를 맡은 의정부지법 제3형사부(이성균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항소는 제반 상황을 살펴봤을 때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며 “항소심까지 충분히 방어권이 보장됐으며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법정구속 이유를 설명했다.

최씨는 2013년 4~10월 경기 성남시 도촌동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은행에 약 347억원을 예치한 것처럼 통장잔고 증명서를 위조해 행사한 혐의와 전 동업자인 안모씨의 사위 명의를 빌려 이 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후 등기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습니다.

재판부는 재판과정에서 각 혐의에 대한 증거 등을 설명했다. 최씨 측이 1심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던 위조 사문서 행사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위조된 잔고 증명서를 민사소송에 제출하는 것을 알고 공범과 함께 잔고 증명서를 위조해 행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관련 도촌동 땅이 매수되고 이후 상황까지 종합해 봤을 때 전매 차익을 위해 명의신탁을 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양형 부당을 주장한 피고인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주도해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는 동안 관련 개인과 회사가 피고인의 뜻에 따라 이용당했다”며 “자신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경도된 나머지 법과 제도 사람이 수단화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심의 형은 적정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범죄 행위로 얻은 이익과 불법의 정도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답니다.

최씨 “정말 억울하다”

재판장에게서 법정구속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최씨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저를 법정구속한다고요”라고 말한 후 “판사님 그 부분은 정말 억울합니다. 내가 무슨 돈을 벌고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라고 항변했다. 이후 계속 억울함을 토로하던 최씨는 “하나님 앞에 약을 먹고 이 자리에서 죽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하며 쓰러졌다. 최씨는 결국 법원 관계자들에게 들려 퇴장했습니다.


최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당초 지난 5월 예정이었으나 6월로 미뤄졌다가, 추가 증거 제출 등 사유로 지난 7일 한 차례 더 변론 기일을 연 뒤 이날 진행됐다. 최씨 측은 최후 변론에서도 동업자 안씨에게 속은 것이라며 부동산실명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최씨 변호인은 “검찰은 피고인이 땅을 얻음으로써 이득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피고인은 채*자로서 채*을 회수한 것일 뿐인데 이게 불법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또 피해금에 대해선 금원을 모두 지급하고 피해자로부터 처벌불원서까지 받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명의신탁은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는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고 말했다. 최씨 역시 “안씨의 거짓말에 속았는데 재판이 나면 그를 위증죄로 고소할 것”이라며 “안씨는 여러 개의 전과가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해 저같이 억울하게 당하는 일 없도록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해결사’ 양평군 국장, 승진 직후 양평고속도로 변경안 결재
- 2023. 7. 20

윤석열 대통령 처가의 ‘경기도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양평군 공무원 ㄱ국장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양평 고속국도(고속도로) 노선 변경 과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양평군이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불거진 강상면 병산리 종점안 등 3가지 노선안을 지난해 7월 국토교통부에 제시할 당시, ㄱ국장이 관련 공문을 결재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일 언론의 취재를 종합하면, ㄱ국장은 지난해부터 국토부와 서울-양평 고속도로 협의 과정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조사를 진행하던 국토부는 지난해 7월11일 ‘1차 관계기관 협의’ 차원에서 양평군, 하남시, 서울시 등 9개 기관에 고속도로 노선에 대한 의견 요청 공문을 보냈다. 당시 국토부가 관계기관에 보낸 공문엔 종점 위치가 2021년 4월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양서면으로 돼 있다. 양평군 관계자는 “해당 공문을 받은 시점에 타당성조사 용역사(경동엔지니어링·동해종합기술공사 컨소시엄)도 양평군을 방문했는데, 이때 용역사가 제시한 노선대의 종점도 양서면이었다”고 말했답니다.

국토부의 의견 조회로부터 15일 뒤인 지난해 7월27일, ㄱ국장은 양평군이 희망하는 3개 노선안을 국토부에 공문으로 발송했다. 공문에 첨부된 문서를 보면, 양평군은 3개 노선안 가운데 2번째 노선안으로 ‘강하 나들목(IC)’을 강하면 왕창리에 설치하고 종점 격인 양평 분기점(JCT)을 강상면 병산리 부근에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최근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불거진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 보고서에서의 최적 대안(병산리 종점안)과 일치하는 것으로, 양평군이 제시한 대안 2에서 사실상 처음 등장한답니다.

양평군은 1차 관계기관 협의 당시 1안으로 강하면 운심리에 강하 나들목을 설치하고 예비타당성조사안과 마찬가지로 양서면에 양평 분기점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평군의 1안대로 고속도로를 만들 경우 강하 나들목 이후 급격하게 북쪽으로 노선이 꺾이는데다, 지역에서 요구하는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국지도 88호선 연계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는 양평군 요청대로 강하 나들목을 설치하려면 양평군이 지난해 7월 제시한 2안처럼 종점을 병산리로 이동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는 설명을 일관되게 내놓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1차 관계기관 협의 결과와 용역사가 제시한 대안노선안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합리적인 대안노선(병산리 종점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의 결정적 ‘변곡점’을 제공한 ㄱ국장은 지난해 7월7일 도시과장에서 도시건설국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승진 인사는 전진선 양평군수 취임 6일 만에 단행된 ‘원포인트’ 인사였다. 전 군수의 첫 대규모 인사는 ㄱ국장에 대한 인사보다 8일 늦은 시점으로, 유독 ㄱ국장에 대한 인사를 서둘러 진행한 모양새다. 당시 ㄱ국장이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받는 중이었는데도 도시건설국장으로 승진하자,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선교 국민의힘 전 의원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뒷말도 무성했답니다.

원로가수 남일해 "1960년대엔 비보다 한수 위"
- 2010. 10. 12.

'빨간구두 아가씨'라는 노래로 유명한 원로가수 남일해(본명 정태호)가 지난 1960년대 자신의 인기를 후배 가수 비(본명 정지훈) 보다 높이 평가했답니다.

 

 

 

남일해는 12일 오전 전파를 탄 KBS 2TV '여유만만'에서 MC 최원정 아나운서가 자신을 1960년대의 비로 표현하자 "당시에는 지금처럼 가수가 많지 않아 비 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상황이다"고 밝혔답니다.


이어 그는 "극장 쇼를 마친 뒤 다른 극장 쇼에 겹치기 출연하기 위해 이동하다 팬들에게 둘러싸여 옷이 다 뜯겨 나간 적도 있다"며 가수 최희준과 쌍벽을 이루며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또한 남일해의 아내 주란지 씨 역시 "남편의 어떤 점에 반해 결혼하게 됐느냐?"는 '여유만만' 제작진의 질문에 "당시 남편은 우리나라 가요계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데다 무뚝뚝하면서도 점잖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고 답해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답니다

한편 남일해는 지난 1959년 '비 내리는 부두'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래 '빨간구두 아가씨'를 비롯해 '맨발로 뛰어라', '첫사랑 마도로스', '이정표' 등 다수 히트곡을 남겼으며 연예인협회 가수분과위원장을 역임하고 KBS 가요대상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꾸준히 신곡 발표하는 가수 남일해의 끈기
- 2009. 5. 19

데뷔 후 50년 동안 해마다 신곡 발표 나이 잊은 활동영화배우였던 아내 주란지씨 꾸준한 내조가 원동력일주일에 3, 4일 지방서 가수 인생 특강 스케줄 빽빽


우리나라 대중예술계에는 데뷔한지 50년 안팎의 경력을 가진 가수들이 많다. 최희준, 현미, 패티김, 이미자, 한명숙, 박재란, 위키리, 박형준 등등, 웬만하면 50년 기념 공연을 갖는 것입니다.

지난 1958년부터 59년 또는 60년대에 많은 가수들이 데뷔한 이유는 그 무렵부터 대중들이 신선한 새 노래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 첫째 이유다. 또 하나의 동기는 미군부대에서 활동하던 가수와 연주인들이 일반 무대로 옮기면서 대중가요의 르네상스를 맞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입이 대중가요의 중흥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답니다.

이 무렵 그렇게 많은 가수들이 활동을 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러나 50년 동안 매년 새로운 곡을 취입하고 발표하는 가수는 유일하게 남일해 뿐이라고 여겨진다.

1939년 생이고 만 20세가 되던 해인 1959년에 데뷔 했으니까 올해가 가수 인생 만 50년이다. 그는 2007년에 <안부>라는 신곡을 취입해서 CD를 발매했고, 2008년에는 <반갑다 친구야>라는 내놓았다. 2009년에도 신곡을 발표하려고 준비 중인데 7월 이내에 선을 보일 생각이라고 한답니다.

<맨발로 뛰어라>나 <빨간 구두 아가씨>와 같은 경쾌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음색에 어울리고 특유의 끈적거리는 창법으로 부르는 가요라고 한다. "아마 제 노래를 사랑하는 분들이 엄청 좋아하실 분위기 일겁니다. 스탠다드한 트로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대해 주이소" 라고 말하며 그는 자신에 차 있다. 이토록 자신을 갖게 되는데 에는 부인의 내조가 큰 몫을 한답니다.

남일해의 부인 주란지씨는 1960년대 초에 아주 잘 나가던 영화배우였다. <이정표>를 비롯하여 여러 곡의 노래가 큰 히트를 하며 인기 절정에 있던 남자가수가 미녀 배우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큰 기삿거리다. 여자배우가 남자가수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케이스인 것이다. 나는 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장소는 서울 중구 인현동에 있는 이른바 적산가옥 처럼 생긴 집이다. 남일해와 주란지를 나는 모두 잘 알고 있는 터라서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로맨스로 알려지지 않고 스캔들로 비쳐지면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남일해와 주란지, 결혼 임박'이라고 신문(한국일보 자매지 <주간한국>)에 대서특필 했다. 1964년이랍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결혼에 문제가 생겼다. 남일해의 친형인 정상호씨(남일해의 본명은 정태호)가 완강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부모도 아니고 형인데 무슨 큰일일까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들 형제의 깊은 우의를 안다면 '큰일'임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남일해에게 형은 어버이와 같고 또 실제로 정상호씨의 동생 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가요계에서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일해와 주란지는 이미 동거를 시작했고, 내가 신문에 기사를 쓴 그 다음 해인 65년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들은 66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현재 3명의 아들이 있다.

주란지는 1941년생으로 부산에서 자랐다. 예쁘고 개성 있는 얼굴로 일찌감치 영화계에 데뷔 했고, <임꺽정>, <단종애사>, <애꾸눈 박>, <색스폰 부는 처녀> 등 많은 영화에 출연 하다가 남일해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답니다.

그 뒤 그는 영화계를 떠나 전업주부를 하다가 외식사업에 뛰어들었다. 서울 대치동에서 냉면 전문 식당을 개업을 했는데 이 사업이 '대박'을 터뜨렸고, 서울 시내 여러 곳에 체인점을 차렸다. 남일해가 좋은 가수, 꾸준한 가수로 남을 수 있는 배경에 부인의 도움이 크다는 것을 말해 주는 대목이랍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몸, 그리고 칠순을 넘긴 나이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의 말대로 큰 욕심을 갖지 않기 때문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도 60년대에는 노래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특히 최희준과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선의의 라이벌 의식은 두 사람 뿐만이 아니라 가요계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최희준이 노래한 <맨발의 청춘>과 남일해가 부른 <맨발로 뛰어라>가 좋은 예이기도 하답니다.

남일해는 최근에 지방에 자주 간다고 한다. 공연이 있어서 가기도 하지만 특강을 많이 하러 다닌다. 일주일에 3,4일은 지방에 가 있다. 대학생, 시청 공무원, 지방에 있는 기업의 사원들에게 강의를 하는데, 50년 가수생활을 하면서 느낀 인생 공부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들을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저는 아울러 다른 사람들하고 무대에 올라가는 것부터 다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등장을 합니다."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고 한다. 내가 무슨 강의를 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 했지만 50년간 연예인 생활 속에서 생긴 일이 좀 많은가,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이야기들도 흥미 있게 들릴 수 있겠구나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답니다.

이 두 시간 강의하는 동안 7곡 정도의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고, 또 노래 부르는 식의 독특한 방식 때문에 인기가 있어서 요즘 아주 바쁘게 스케줄이 잡혀 있다며 들떠 있다.

지난 날 몇 편의 영화에 출연을 하기도 했지만, 남일해는 역시 타고난 가수다. 그냥 열심히 노래 부르는 것이 그에게는 적성이 맞는다. 남들처럼 수다스럽지도 않고 부산하지도 않다. 아마 요새 TV화면을 휩쓸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에는 섭외가 오지도 않고 섭외가 와도 나가지 않을 것 같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본명 이름
최효중

출생 나이 생일
1964년 10월 18일 (58세)
고향 출신
전라남도 목포시

데뷔 년도
1984년 1집 앨범 '첫정'
학력
목포여자고등학교 (졸업)
호남대학교 (의상학 / 학사)

종교
무종교
소속사
C&C 엔터테인먼트

아나운서 출신 가수 최유나 "남편은 오직 나를 위해서만 일해"
- 2020-08-28 

가수 최유나가 이름을 올리면서 관심을 받고 있답니다.


올해 나이 57세인 가수 최유나는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만나 남편 백정인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최유나와 남편은 가수와 기획자로 호흡을 맞췄고, 결혼까지 성공하게 됐다.

티비조선 '마이웨이'에 출연한 가수 최유나는 "어떤 사람들은 제가 아직도 결혼을 안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의 외조 덕분에 인기 가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상황이다"고 털어 놓았답니다.

하지만 최유나는 "남편과 처음엔 맞지 않았다. 군대처럼 지시하는 스타일었고, 추진력이 강하고 굉장히 대찬 성격이었다. 그래서 센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나에 대한 애정표현이었다"며 "정말 나한테는 잘하는 사람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유나는 노래 '흔적'이 뜨고, 남편이 매지니먼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여럿 부탁했지만 한 사람도 하지 않았다. 오직 최유나만을 위해 일하는게 게 목표이고 최유나에게만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며 남다른 남편의 애정을 자랑했답니다.

최유나는 또 남편과 결혼 이후 자녀를 갖지 않은 이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최유나는 "한 가지를 얻으려면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흔적'이 좀 늦게 됐다. 시간이 흘러서 히트가 됐기 때문에 그 시간을 놓치기 싫었다. 자녀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가질 시간을 놓치게 됐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가수 최유나는 남편과 자녀 입양도 고려 했었다는 사실을 털어 놓으며 "완벽하게 못 해줄 것 같으면 (입양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답니다.

한편, 1964년생인 최유나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목포 MBC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가수로 전향했다.

“고향초 감성” 최유나, ‘가요무대’ 적신 보이스
-2023. 4. 3.

가수 최유나, ‘고향초’ 감성은 대단했다.

3일 밤 방송된 KBS1 ‘가요무대’에는 가수 최유나 씨가 출연해 ‘고향초’를 압도적으로 소화하는 모습이 공개됐답니다.

무대에 등장한 최유나는 세련된 올블랙 패션으로, 중후하면서도 아름다운 원숙미를 과시했다.


최유나의 묵직하고 깊은 보이스는 일찍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터. 이날 역시 그는 이미자 등 대선배들이 부른 이 명곡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두드렸습니다.

중후반부에 이른 아름다운 가사에 더불어, 최유나의 곱씹고 읊조리는 듯한 소화력은 브라운관의 봄밤을 촉촉하게 적셨답니다.

'전우가 남긴 한마디' 가수 허성희(1958년생) " 박정희 전대통령께서.."
- 2013. 6. 6

6월 호국 보훈의 달이면 떠오르는 가수가 있다. '전우가 남긴 한마디'의 허성희랍니다.

그녀는 최근 국민들이 6월 한달만이라고 조국을 위해 희생분들의 고마움을 노래로서 되새기는 것 같아 기쁘다고 밝혔다.또 이 노래가 히트 한 계기는 "당시 박정희 전대통령께서 우연히 들어보시고 군 부대에 노래 확산을 정말로 권장했었기 때문"이란 일화를 소개했답니다.


이번달 말 그녀는 오랜 공백을 깨고 신곡 '독도 찬가(작사 손기복·작곡 임정호)'를 발표 한다. '독도찬가'는 경쾌한 디스코풍 노래입니다.

 "파도를 이겨내고 동해를 지켜온 자랑스런 한반도코리아 섬마을~" 시인이 지은 시적인 가사가 친숙하고 누구나 따라 부를수 있는 건전 가요이다.레코딩 판을 들어 보니 젊은 시절 같은 파워풀한 음색이 '전우가 남긴 한마디'처럼 힘찬 기운을 불어 넣은 듯 하다. 여가수가 불러서인지 기존의 여타 남성 가수들이 부른 독도 노래와는 색다른 맛을 주는 것이다. 그녀는 " '독도 찬가'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힘을 모으는 응원가 처럼 불려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고 말했답니다.

그녀는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79년말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정착했었다. 미국서 CEO에서 세일즈 우먼까지 다양한 변신을 거듭했다.비즈니스 우먼으로 성공을 맛보기도 했지만 본업인 노래를 놓지 않았다. 특히 한인 교포들을 위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노래로서 그들에게 향수를 달래 주었다고 한답니다.

무서울 것 없었던 미국에서의 다양한 생활 경험이 강한 가수로 재기하는데 용기를 주었다.신곡 '독도 찬가'를 계기로 '40소절의 왈츠 '뜨거운 사랑'등 그녀의 명곡들을 리메이크 음반에 담았다.'전우가 남긴 한 마디'도 영어로 부를 계획을 갖고 있단답니다.

새 앨범 '독도찬가'로 다시 팬들앞에 서 신인가수로 돌아온 기분이라는 가수 허성희. 조용필, 문주란,김흥국 같은 노장 가수의 복고 열풍을 타고 올드팬은 물론 신세대들에게도 감동을 줄지 그녀의 활동에 기대가 모아진답니다.

'전우가 남긴 한마디'의 주인공 허성희 '독도찬가'로 20년만의 컴백
- 2013. 8. 26

전우가 남긴 한 마디'의 가수 허성희가 건전가요 '독도찬가'(임정호 작곡)를 들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오랜 시간 미국에 머물던 그녀가 귀국해 20여년만에 선보인 '독도찬가'는 독도의 아름다움을 흥겨운 선율에 담은 노래다. 록 디스코 리듬의 트로트 풍의 '독도찬가'는 그녀의 표현대로 '전우가 남긴 한마디'에 이어 또 다시 만나게 된 운명같은 곡이다.


시인이자 독도운동가로 유명한 손기복 시인의 가슴벅찬 노랫말과 중견 작곡가이자 현재 남부대학교 음악과 외래교수인 임정호 특유의 편안하고 감성적인 멜로디가 탁월한 앙상블을 이루는 곡이랍니다.

독도가 가진 천혜의 아름다움, 그리고 한민족의 얼과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독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담은 노랫말은 훙겨운 멜로디 속에 담겨 잔잔한 감동을 준답니다.

허성희는 70년대 후반 '전우가 남긴 한 마디'로 일약 가요계를 주도했던 가수. 이 한곡으로 그녀는 6.25에 이어 월남전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던 수많은 영혼의 아픔을 따스이 보듬어 주었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호국의 달 6월이면 애창되는 전쟁가요의 대명사가 됐답니다.

하지만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미국으로 출국해 팬들의 아쉬움을 남겼답니다.

"갑자기 제가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가니 이런저런 루머들도 많았는데, 사실 당시엔 그저 좀 쉬고 싶었어요. 어린 나이에 갑자기 인기를 얻고 '방송이다 군부대 위문공연인 것이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보니까 마음이 공허해졌던 것이죠. 문득 제가 모르는 더 넓은 세상에서 새 출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구요."라고 전했답니다.

무작정 건너간 미국은 그녀에게 결코 녹록치 않았다. 옷가게 매니저에서부터 세일즈우먼까지 낯선 일을 접하며 겁없이 살았다. 하지만 바쁜 미국생활의 와중에도 결코 음악을 놓지는 않았답니다.

미국생활에 적응한 뒤엔 샌프란시스코에 초대형 라이브클럽을 차리고 자신도 직접 매일 저녁 무대에 올라 본고장의 음악인들과 재즈와 힙합을 부르며 음악과 교감했다. 지난 90년대 초 일시 귀국해 발라드 '멈추지 않는 사랑'(작사/곡 임정호)을 발표하기도 했답니다.

어른가요에서부터 본토 재즈와 힙합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음악성을 가진 가요계의 숨겨진 디바 허성희. 그녀가 한층 원숙해진 목소리로 다시한번 가요계를 노크해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답니다.

'마이웨이' 의리파 박일남 "가수가 내겐 천직
= 2019. 12. 19

박일남이 오랜 시간 가수로 활동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18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는 57년차 가수 박일남이 출연했다. 박일남의 대기실을 가수 김세환이 찾았다. 김세환은 "어떻게 하다 보니 친구가 됐다"며 "신인 때는 이 선배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이 선배가 나를 정말로 무서워한다"고 말했답니다.


박일남은 가수가 된 계기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다가 그 해에 우연히 킹 레코드라는 회사 사장을 만나게 돼서 바로 '갈대의 순정'을 녹음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난 가수가 쉽게 된 사람"이라고 운이 좋았다고 회상했답니다.

박일남은 가수 남진을 찾았다. 남진은 "박일남이 내 해병대 후배로 들어왔다. 그때 후배 가수로 생활하며 쌓였던 감정을 풀었다"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남진은 "박일남의 히트곡을 들어 보면 솜사탕이 푹 가라앉는 것 같다"라고 박일남의 노래에 대해 말했다.

한편, 박일남은 납치될 뻔했던 과거 일화를 언급했다. 박일남은 "모 재벌 사모님이 생일파티에 오라고 했는데 안 갔다. 그러자 건장한 남자들을 시켜서 나를 차에 태웠다. 차 안에서 다 부수고 내렸는데, 그때 그런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답니다.


이날 박일남은 후배 가수 문주란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박일남은 이사를 간 문주란을 위해 휴지와 컵을 선물로 준비했다. 문주란은 "옛날에 깡패들이 진짜로 식사 초대를 해서 박일남과 함께 갔다. 깡패들이 깐족거리고 나를 희롱하려고 하자 박일남이 상을 엎어 버렸다. 그때 속이 시원했던 것이 안 잊혀지는 것입니다"고 말했답니다.

박일남은 대성사를 찾았다. 박일남은 "가요계에 연고자가 있는 분도 있고 없는 분도 계시다"며 "그래서 모셔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6월달이 정말로 보은의 달이니 우리도 가요계를 위해 애썼던 분들을 한자리에 모셔 놓고 기리는 날을 정하자고 했다"고 취지를 밝혔답니다.

한편 박일남은 신곡인 '화양연화'를 연습했다. 박일남은 "내 인생에 최고의 날을 화양연화라고 한다. 그걸 노래한 거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일남은 최고령 MC 송해를 만났다. 박일남은 "상가집에서 가수 쪽이랑 코미디언 쪽이랑 시비가 붙었다. 그때 송해가 '너는 나오지 말라'며 뺨을 때렸던 것이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송해는 "박일남이 울컥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맞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라고 때려 줬다"라고 이유를 밝혔답니다.

송해는 "그때만 해도 상당히 열악했다. 연예인을 경시했다. 공연 끝나면 허무해서 술을 한잔하게 된다"고 회상했다. 박일남은 "그래서 정을 많이 받았고 그 정으로 살고 있던 상황이다"고 덧붙였습니다. 송해는 "그저 더도 말고, 정말로 덜도 말고 이 기분으로 쭉 마이웨이 하자"며 잔을 부딪혔답니다.

박일남은 "그 많은 사건 사고에도 진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해 줬던 분들에게 고맙다. 가수가 내겐 천직이다"고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소감을 밝혔답니다.

국회 정보위원장에 3선 김경협..노동계 출신 친문
- 2021. 1. 8

신임 국회 정보위원장에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3선·경기 부천갑)이 8일 선출됐다. 노동계 출신인 그는 당내 한반도 이슈를 주도해 온 대표적인 외교통이다

국회는 이날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총 투표수 167표 가운데 찬성 159표로 김 위원장을 정식 선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1962년 12월 전남 장흥 출생으로 초·중학교를 장흥에서,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학생운동에 투신했으며 1985년 삼민투 사건에 연루돼 2년 동안 투옥됐다.

이후 노동계에 몸담았으며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 위원장을 지냈고, 노사관계 전문가로 정계에 입문했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부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고, 2005년 참여정부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공천됐으나 낙선했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시 현역이던 상대 후보를 꺾고 당선돼 화려하게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20대, 21대 총선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답니다.

당에서는 정책위 부의장, 원내부대표, 경기도당 위원장, 수석사무부총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경험했다.

특히 19대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 위원, 20대 국회 외교통일위 간사, 민주당 남북경협특위원장, 21대 국회 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특위원장 등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외교 관련 직책을 다수 맡았답니다.

국회 외통위 간사였던 지난 2017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바 있으며, 21대 국회에서는 정보위와 기획재정위에서 활동해 왔다.

20·21대 국회에서는 한반도 종전선언 결의안을 연속 발의했으며,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해 왔습니다.

당내에서도 강성 친문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 위원장은 권력기관 개혁 등 주요 국정과제 논의에도 적극적 나서 왔다. 지난해 12월11일에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과 관련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섰으며 3시간12분 동안 발언했다.

한편 국회 정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당시 위원장이던 전해철 의원이 행정안전부 장관에 오르며 공석이 됐답니다.

불법 땅거래' 김경협 징역형 집행유예…의원직 상실형
- 2023. 5. 19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60·부천갑)이 토지거래 허가구역 내 땅을 불법 매입한 혐의로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단독 박효선 판사는 19일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의원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어 이 같이 선고했답니다.

박 판사는 또 김 의원에게 땅을 팔았다가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76)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하지만 증거에 의하면 토지거래 허가를 받지 않으려는 목적이 인정된다”면서 “토지거래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매매 계약을 했다”고 판시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들은 부동산 거래 질서를 확립하려는 관련법과 토지거래 허가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 죄질이 불량해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면서 “전·현직 국회의원인 피고인들이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답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확정되면 김 의원은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회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을 확정받은 국회의원은 피선거권을 상실해 의원직을 잃는다.

김 의원은 2020년 5월 19일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토지거래 허가 구역 내 668㎡ 토지를 이 전 장관으로부터 5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지방자치단체 허가를 받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해당 토지는 2018년 12월부터 토지거래 허가 구역으로 지정됐고, 거래하려면 부천시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후에도 지난 2019년 12월에는 공공택지 사업지구로 지정되면서 보상 대상에 포함됐다. 김 의원이 5억원에 매입한 토지의 수용보상금으로 11억원이 책정됐답니다.

검찰은 토지거래 허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보상금과 관련한 약정을 하고 근저당권 설정까지 마쳤다며 김 의원과 이 전 장관을 기소했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본명 이름은
브라이언 패트릭 오그레이디

출생 나이 생일
1992년 5월 17일 (31세)

고향 출생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국적
미국

학력
럿거스 대학교
신체 키 몸무게
188cm / 97kg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년도
2014년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245번, CIN)

소속팀
신시내티 레즈 (2019)
탬파베이 레이스 (202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22)
한화 이글스 (2023~)

연봉
2023 / $700,000

한화의 속앓이, 오그레디를 어찌할꼬?
- 2023. 5. 16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최근 감독을 교체했다. ‘리빌딩 전문가’로 데려온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경질하고, 퓨처스(2군)팀을 이끌던 최원호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새로 출발한 한화는 선두 SSG 랜더스와의 주말 3연전에서 팽팽한 싸움을 했다. 1승과 1패를 주고받은 뒤 지난 14일 경기에선 연장 접전 끝에 3-3으로 비겼습니다.


신임 감독을 맞아들인 뒤 새 출발을 다짐하는 한화의 가장 큰 고민은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31)의 부진이다. 오그레디는 4시간 58분 진행된 연장 12회 혈투 동안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총 여섯 번 타석에 들어서 8회 초 볼넷으로 한 차례 출루한 게 전부다. 특히 연장 12회 초엔 대타 박상언의 안타로 만든 1사 1루에서 루킹 삼진으로 돌아섰다. 2사 후 최재훈과 김인환의 연속 안타가 나오지 않았다면, 한화는 득점하지 못할 뻔했다.

오그레디는 올 시즌 연봉 90만 달러(약 12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한화에 왔다. 일본 프로야구(세이부 라이언스) 출신이라 한국 야구에도 금세 적응할 거라 여겼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15일까지 9경기에 나서 타율 0.125(72타수 9안타), 8타점에 그치고 있다. 개막 후 34경기를 치르는 동안 홈런은 하나도 치지 못했답니다.

한화가 지난 겨울 큰돈(4년 총액 90억원)을 들여 FA 채은성을 영입했지만, 오그레디가 타선의 흐름을 끊으니 그 효과도 100% 살리지 못했다.

선두 SSG의 외국인 타자 기예르모 에레디아와 비교하면 기록은 더 처참하다. 오그레디의 OPS(출루율+장타율)는 0.346으로 에레디아의 출루율(0.427)에도 못 미친다. 에레디아는 한화가 3-2로 앞선 12회 말 공격에서 천금 같은 동점 홈런을 터트려 팀을 구해냈다. 에레디아가 신나게 그라운드를 도는 동안 오그레디는 더그아웃에서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답니다.

한화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팀이 상위권으로 도약하려면 외국인 선수의 활약이 절실하다. 그런데 올해도 시즌 초부터 ‘대흉작’을 예고하고 있다. 연봉 100만 달러에 계약한 투수 버치 스미스는 부상 탓에 한 경기만 던지고 일찌감치 짐을 쌌답니다.

외야수 오그레디는 개막 직후부터 헛스윙만 연발하다 지난달 22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18일간 2군에 머물다 지난 11일 돌아왔지만, 여전히 감을 못 찾고 있다. 복귀 다음 날인 12일 2루타를 때려내자 최원호 감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맙다”고 했을 정도다.


한화 팬들은 올해도 팀이 하위권에 머무는 데다 수베로 감독이 갑자기 물러나자 격앙된 상태다. 팬들은 “감독 교체를 발표한 시점과 시기는 물론 교체 방식도 기존 감독과 새 감독 모두에게 적절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베로 감독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리빌딩하자고 계약한 감독을 성적 때문에 내보내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경기가 없던 15일엔 일부 팬이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내 “항의 표현을 하기 위해 트럭시위를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밝혔답니다.

팬들이 분노하는 것은 한화가 최근 수년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해마다 외국인 선수 계약에서 헛다리를 짚은 프런트도 성적 부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최 감독은 “오그레디는 2군에 왔을 때도 밸런스가 썩 좋지 않았다. 훈련 때 좋다가도 정작 경기에서는 제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며 “오그레디의 부진에 대해선 (손혁) 단장님도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고 털어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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