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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사망자 사고원인 위치 노래 남단사거리

참아남 2021. 6. 5. 11:28

지난 1994년 10월 21일 경에, 한강다리인 성수대교의 중간 부분이 붕괴되어 많은 인명이 희생된 사고였습니다. 6.25 전쟁 이후에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와 더불어서 붕괴 사고로는 큰 인명피해를 안긴 사고이면서도,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김영삼 정권 시대의 굵직한 기록으로 남겨진 참사랍니다.

한편, 32명이라는 사망자 수만으로 본다면 광복 이후의 인명참사 규모로 10위권 밖이랍니다. 하지만, 인명피해가 많은 사건들은 대부분 비행기가 추락한다거나, 이어서 고속도로 위에서 차량이 충돌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사고는 수도 한복판에 있는 멀쩡한 한강 다리가 정말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충격을 가져왔답니다.

사고날짜는 1994년 10월 21일이었으며 금요일이었습니다. 00시 20분 무렵과 아울러서, 02시 30분 무렵 1.3 x 2 m 크기 철판이 성수대교 상판 이음새에 깔려 있음을 당시 운행하던 운전자들이 목격하였답니다. 상판 이음새 부분에 심하게 벌어진 틈새를 덮으려는 서울시의 땜질식 응급 조치였답니다.

그렇지만 균열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답니다. 사고 당일 새벽 6시 경에 성수대교를 통과하고 있던 차량의 운전자는 이음매를 지날 때 충격이 너무 커서 서울시에 직접 신고하기도 했답니다. 이런 상황에도 안일하게도 교량진입 통제 등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은지라 결국에는 대형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답니다.


1994년 10월 21일의 오전 7시 38분 경에 성수대교의 제10과 아울러서, 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 m가 붕괴되었답니다. 해당 사고 부분을 달리던 기아 베스타 승합차 1대와 더불어서 기아 세피아, 기아 프라이드 승용차 각 1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습니다.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대우 르망과, 현대 엑셀 승용차 각 1대가 물 속으로 빠졌으며, 운전자를 포함한 동승자 3명은 모두 사망했습니ㅏㄷ.

이후에는 서울대공원에서 번동 방향으로 가고 있던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는 버스 기사 유모 씨가 붕괴 지점을 발견하고 최대한 급브레이크를 밟았던 상황이지만 전륜은 붕괴지점 밖으로 밀려나갔으며, 후륜이 붕괴 부분에 걸친 상태로 정지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잠시 뒤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했습니다.

결국에는 버스 1대와 아울러서,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모두 차량 6대, 탑승자 49명이 추락했으며 이 중 32명이 사망했습니다. 사상자 대부분이 추락했던 16번 시내버스에서 발생하였으며 운전기사를 포함한 탑승자 31명 중 사망자가 29명이나 나왔습니다. 안타까웠던 점은 사고 발생 시각이 아침 출근과 아울러서, 등교시간이라 등교하던 학생들을 비롯해 출근하던 직장인과 교사 등 평범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