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로서 김혁건 사고 오토바이 나이 아버지 결혼 고향
지난 2014년 때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는 더 크로스 김혁건과 이시하가 출연해 힘들었던 과거와 다시 노래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답니다.
당시에 김혁건은 휠체어를 타고 무대 위에 올랐답니다. 김혁건은 "당시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는데 예측 축발하는 차와 정면충돌했던 상황이다. 차에 얼굴을 박고 땅에 떨어졌다. 목이 부러지면서 이제 죽겠구나 싶었던 마음이다"고 사고를 회상했답니다.
이어 김혁건은 "복식호흡을 하면서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버텨야지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 부모님이 오셨는데 의사가 아버지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시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부모님 얼굴을 본 후 마음의 정리를 하고 의식을 잃었던 상황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의식 회복 후에도 힘들었던 나날은 계속됐답니다. 김혁건은 "나와 같은 환자들은 일반인 폐활량의 1/3인 상황이다. 경추 손상으로 어깨 아래 모든 근육이 마비되어 장기의 움직임도 어려워졌던 것 같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밝혔답니다.
아울러 "1년 동안 1주일에 3번씩 썩을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식물인간 상태였기 때문에 초반에만 해도 눈만 뜨고 연락을 하거나 받을 경황이 없었던 상황이다"고 덧붙였답니다.
- 김혁건의 과거 활동!
한편 더 크로스는 물론 락밴드크로스, 뒤이어 솔로 활동에서도 성악을 활용한 창법으로 고음을 내는 허스키한 록 보이스로 일반인들이 노래방에서 정말로 그의 노래에 도전했다가 대부분이 실패할 정도로 유명하답니다. 그가 부른 노래들 중 최고음이 무려 3옥타브 였답니다.
지난 1999년 이시하와 더 크로스 결성 후 인디밴드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이후에 2001년에 M.net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 락 부문 대상 수상을 계기로 GF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었으며, 2003년에 1집 Melody Quus를 내면서 프로에 데뷔하였답니다. 당시 타이틀 곡인 'Don't Cry'의 고음으로 유명해졌답니다. 아울러, 지난 2014년에 본인이 더 크로스 완전체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했을 때 패널들이 입을 모아 노래방에서 남자들이 도전하다가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아울러 후속곡 '당신을 위하여'와 '이별의 간주곡' 외에도 앨범에 수록된 다른 노래들도 마찬가지로 남성팬들이 번번히 실패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 언더그라운드에서 고음으로 인기를 끌고 사랑받는 것과 아울러서, 그리고 대학교 행사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음은 물론 환호 소리가 굉장한 것과는 달리 상업적으로는 실패하는 바람에 소속사, 그리고 이시하와의 마찰이 생각보다 심했답니다.
아울러 더 크로스 항목에 나와있듯이 이시하가 소속사에 대한 충성심이 오히려 김혁건 본인과의 오해를 크게 사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사실 김혁건 쪽도 만만치 않은 원인을 제공했답니다. 한편 더 크로스에서 전술된 소속사와의 마찰로 인한 이시하와의 오해가 갈수록 장기화되자 김혁건 자신은 "자신만의 록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더 크로스를 탈퇴하였으며, 이후 동두천 락 페스티벌에서 활동했던 밴드 세션들과 함께 락밴드크로스를 결성한답니다. 데뷔곡은 '비가와'였답니다.
이어서 언더그라운드 등지에서 활동하며 다시금 고음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독일 월드컵 당시에도 싸이와 더불어 월드컵 가수로 선정되어 디지털 싱글 Goal! Corea!를 내면서 활동하기도 했답니다. 지난 2006년 1집 Rebirth와 더불어서, 1.5집 Legend를 발매했답니다.